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[[1940년대]] 후반 [[1950 FIFA 월드컵 브라질|1950년 FIFA 월드컵]]을 유치한 [[브라질]] 정부가 당시 수도였던 [[리우데자네이루]][* 1960년에 [[브라질리아]]로 수도를 이전했다.]에 "브라질 축구의 [[메카]]"를 지향하며 야심차게 건립을 계획했다. 그러나 착공이 지연되는 바람에([[1948년]] [[8월 2일]]) [[공밀레|노동자들을 밤낮없이 굴려대면서]] 월드컵 개막 직전인 [[1950년]] [[6월 16일]]이 되어서야 임시로 개장했고, [[선개통 후완공|대회 기간 중에도 공사를 계속하여 브라질의 마지막 경기 직전에야 간신히 완공했다]]. 준공 당시 관중석 규모는 입석을 포함하여 20만석 남짓으로, 당시 축구 경기장들 중 세계 최대의 수용 인원이었다. 그런데 [[1950 FIFA 월드컵 브라질|1950년 월드컵]]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던 마지막 경기인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 vs [[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|우루과이]]전에서는 이마저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니, 당시 브라질 국민들의 월드컵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. 이후 관중석에서 사고가 난 것을 계기로 안전 문제가 대두되자, 입석을 금지하여 좌석 수를 축소해 지금의 규모로 되었다. 앞서 말했다시피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 대 우루과이의 마지막 결선 리그전이 펼쳐지기도 했고, 그리고 리모델링을 거쳐서 64년 만에 브라질에서 다시 열린 [[2014 FIFA 월드컵 브라질|2014년 FIFA 월드컵]]에서도 사용했다. 가장 마지막인 결승전 경기가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. [[1950 FIFA 월드컵 브라질|1950년 월드컵]] 때 완공된 경기장 중 유일하게 사용하는 경기장이다. 그리고 [[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]]의 개폐회식과 올림픽 축구 결승전 장소로도 사용됐다. 올림픽 개폐회식을 축구장에서 하는 최초의 사례. 경기장 밖에는 브라질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장 [[이우데라우두 벨리니]](Hilderaldo Bellini)의 동상이 있다.[* 이와 비슷하게 잉글랜드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[[보비 무어]]의 동상이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